해방 후 농지개혁의 주역은 미군정 :: 2018.06.10 07:3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식민지 해방 직후 농지개혁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제 역사학계에서 거의 '합의'에 가까울 정도로 의견일치가 이뤄진 상태다. 지주들의 농토를 국가가 강제로 매입해서 농민들에게 유상분배했던 당시의 조치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의미있는 개혁이었으며, 1960년대 이후 남한 경제 고속성장의 토대가 됐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별다른 이견이 없다.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농지개혁이 의미가 있었냐 없었냐를 두고 쟁점이 형성되지를 않는다. 그런 좋은 일을 주도적으로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각주:1] 진보 계열은 조봉암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뉴라이트에서는 이승만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각자가 자기 편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봉암이 진보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었다고 진보 사학자들이 말하면, 뉴라이트는 애초에 그런 조봉암을 장관으로 임명한 이승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반론하는 식이다. 나는 그냥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세계사의 대가, 에릭 홉스봄의 책을 읽다가 제3의 견해를 발견했다. 이 거장의 시각에서는 남한 농지개혁은 이 땅에 무슨 위대한 정치가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개혁의 추진 동력은 나라의 내부에서 온 게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 일단 읽어보자. 


1945~50년에 인류의 거의 절반이, 모종의 농지개혁을 겪는 나라들에서 살았다. 동유럽과 1949년 이후 중국의 경우 공산주의형의 개혁이었고, 전 영국령 인도 제국의 경우 탈식민화의 결과였으며, 일본, 대만, 한국의 경우 일본의 패전, 보다 정확히 말해서 미국의 점령정책의 결과였다.


 …<중략>…소득불평등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심했고 아프리카가 그 다음이었던 반면, 수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덜했다. 그 나라들에서는 미국 점령군의 보호 하에 또는 미국 점령군에 의해서 매우 급진적인 농지개혁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 1997, 490~492쪽


보다시피 홉스봄의 책에는 조봉암이니 이승만이니 하는 이름들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농지개혁의 주역은 남한 현지의 무슨무슨 정치가들이 아니라 그 땅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외국 군대, 즉 미군정이다. 그게 다다. 참 심플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견해가 아주 낯설고 의심스러웠다. 아니 이상하잖아. 반공국가의 대장인 아메리카 합중국이 언제부터 부의 재분배 같은 걸 좋아했다고. 지주의 땅을 강제로 매입해서 나눠주는 게 농지개혁인데, "빨갱이(commy)" 소리 듣기 딱 좋은 이런 급진적 조치를 미국이 했다는 걸 믿기가 어려웠다. 근데 구글링을 해 봤더니 진짜다. 농지개혁을 처음 시작한 때가 미군정 시기였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팩트다. 공포한 법령에 아예 박아버렸으니까.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뒤 한국 국회가 바통을 넘겨받고 마무리를 하긴 했는데 기본적인 틀은 미군정에서 짜준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농지개혁의 제도화를 완성한 건 건국 이후의 한국 국회니 농지개혁의 주역은 이승만이나 조봉암 같은 한국 정치인이라는 주장들이 있는데, 별로 의미없는 이야기라고 본다. 그냥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편의적 담론에 불과한 것이지. 왜냐? 생각을 해 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는 IMF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줬다. 그들에게 달러 빚을 좀 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주권에 대한 제한이 너무 심해서, 국내 언론에서는 '경제적 신탁통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데 1940년대의 한반도는 외국 군대가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 국가를 세워본 역사도 없었고, 이제 막 식민 통치를 벗어난 게 고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점령국의 의지를 거스르는 게 가능하긴 했을까? 미군정이 한국 국회에 농지개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요구했더라도, 과연 당시의 정치인들이 그냥 수용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기는 했을까? 여기에 'Yes'라고 답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농지개혁은 미군정 입장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이너한 사안이 아니었다. 미군이 점령한 극동아시아 3개국(일본, 대만,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은 농지의 재분배가 없으면 점령지 농민들의 불만이 커져 공산화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사회주의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하는데, 왜 여기선 하지 않느냐고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농민 집단이 생겨나게 둘 수가 없었다. 동아시아 3국은 냉전의 최전선이었고, 이 지역의 정치적 안정은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목표였던 것이다. 일본의 농지개혁을 지휘했던 라데진스키라는 이름의 미국 농무부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농지개혁의 유인으로는 한편으로는 일본 농민의 궁핍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의 처지를 개선하고 일본 농업으로 하여금 공산주의에 반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이 있었다.” 그리고는 “광범한 자작농 창설을 계기로 일본 농촌은 거의 공산주의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각주:2]


홉스봄이 이 책을 쓴 게 1990년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농지개혁이 한국 정치가들의 업적이라고 우기는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판을 쳤다. 학문의 정치화가 이렇게까지 심해도 되는 건가 싶다. 아니 홉스봄이 어느 제3세계의 듣보잡 학자도 아니고, 직업적 역사학자 중에 그의 책을 읽었을 사람이 몇 명인데 이 무슨… 무려 2010년에 출간된 어느 논문에서 나오는 얘기가 이렇다. "정치 또는 법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은 건국헌법의 농지개혁조항이 이승만의 정치적 결단이었으며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군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 왔다."[각주:3] 참고로 그 '과소평가', 조선일보 같은 곳에선 여전히도 현재진행형이다.




  1. 알다시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의 토지개혁에 비하면 가짜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NL(민족해방파)식 해석이 유행했다. 토지 재분배 방식이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였는데,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여서 하나마나한 개혁이었다는 논지였다. 이제는 이런 해석이 논파된 지 오래라 진보진영에서도 그리 공유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2. Kawagoe, T(1999), “Agricultural Land Reform in Postwar Japan: Experences and Issues”,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May 1999. [본문으로]
  3.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84677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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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풍경, 알고 보니 미국산 :: 2018.06.09 03:35

캠퍼스 진보주의자들(liberals:인용자 주)이 개인적 정체성에 더 강하게 매달릴수록, 그들은 합리적인 정치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더 꺼리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새롭고 매우 의미심장한 어법 하나가 대학교들에서 주류 언론으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X로서 말하는데(Speaking as an X…)'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발언자가 특권적인 지위에서 이 사안에 관하여 말한다는 점을 듣는 이에게 알린다. ("게이 아시아인으로서 말하는데, 나는 이 주제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발언은 절대로 없다.) 이 표현은 정의상 비(非) X의 관점에서 유래한 질문들을 차단하는 장벽을 세운다. 그리고 의견 대립을 권력 관계로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논쟁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정체성을 들먹이고 질문이 들어올 때 가장 강하게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이 항상 승자가 된다. 그리하여 과거라면 '나는 A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근거는 이러이러해.'라는 식으로 시작되었을 학급 토론이 지금은 'X로서 말하는데, 네가 B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는 형태를 띤다.


…<중략>…그리하여 금기가 논쟁을 대체한다. 평균보다 더 특권적인 우리의 캠퍼스들은 때때로 태곳적 종교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특정 주제들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은 오직 승인된 정체성 지위를 가진 -샤먼들과도 같은- 자들에게만 허용된다. 특정 집단 -현재는 트랜스젠더 집단-은 일시적으로 토템에 준하는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숙청 의례에서 절차에 따라 지목되는 희생양들 -현재는 보수적 정치 논객들-로 캠퍼스가 넘쳐난다. 명제들은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거나 불결하다고 판정된다. 명제 뿐 아니라 간단한 단어도 순결하거나 불결할 수 있다. 늘 이의를 제기하고 울타리를 넘는 급진주의자로 자부하는 좌파 정체성주의자들은 언어에 관해서만큼은 과묵한 개신교도 여선생처럼 되었다. 그들은 모든 대화에서 오만한 표현들을 찾아내고 부주의로 그런 표현을 사용한 사람들을 마치 옛날 선생들이 학생을 체벌하듯이 제재한다.


- 마크 릴라,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원제 'The once and future liberal', 2018, 93~95쪽

- 강조는 원문 그대로


몇 년 전 트위터를 하던 시절 겪은 황당한 경험이 있다. 동성애 이슈와 관련된 논쟁에 낀 적이 있었는데, 상대편으로부터 내 상식의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이슈에 대한 그의 입장이 아니라 태도였다. 미국에 사는 게이라고 알려진 그는 말했다. '나는 게이라서 동성애 문제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지만, 너(를 포함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이성애자이니 이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입을 닥쳐라. 그것이 겸손한 태도다'라고.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진지했으며 자신에겐 다른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엔 뭐 이런 희한한 또라이가 다 있나 생각했다.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면 발언할 자격 자체가 없다니 이 무슨 창조적 헛소리란 말인가. 그런 논리대로라면 총선에 출마해 본 사람 아니면 국회의원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사 해 본 적 없으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고, 사법고시 합격자 아니면 검찰이나 법원 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즉 세상 대부분의 영역)에 아예 의견을 내지 말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세상사에 대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자신하는 이명박 같은 사람만 예외가 될 것이다. 이렇듯 머리를 몇 초만 굴리면 누구나 논파할 수 있는 수준의 멍청한 소리를 그리 진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쇼킹했다. 대체 얼마나 독특한 정신세계를 발달시켜야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혀를 찼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그의 사고방식은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되려 전형적인 것이었다. 앞서 인용한 책에 서술돼 있듯이 그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집단이 이미 북아메리카 대륙에 형성되어 있었고, 그는 그 덩어리의 흔한 파편이었던 것이다. 문제의 황당한 사고방식은 한반도의 주민인 내게는 그야말로 기괴한 것이었지만, 그의 세계(미국의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무언가였다. 어처구니없지만 그게 그 동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몇년이 지난 현재의 한국에서는, 이제 저런 사고방식을 체화한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는 이들 중 저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찾는 건, 된장찌개에서 두부 조각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쉬워졌다. 요약하면 대강 이러한 주장이다. '여성이 처한 현실은 오직(!) 여성만이 온전히 파악할 수 있으며, (기득권자인) 남성들은 애초에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여성이 성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무언가를 주장하면 너희가 할 일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고방식의 내용에서 '게이'란 단어만 '여성'으로 바꾼 버전이다. 여하간에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이성이나 토론이 아니라 출신이라는 이야기 되겠다.


이런 황당한 사고방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한국은 심하게 미국화된 나라이며, 미국을 베끼는 걸 '선진화'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을 휩쓴 사회적 현상이 몇 년만 지나면 한국에 그대로 수입되는 경우가 숱하다. 미국을 베끼는 데는 진보와 보수도 따로 없다. 한국의 대표적 보수인 전경련이 미국의 보수 레이건('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다')을 베껴 시장만능주의의 전도사를 자임하듯이, 한국의 진보는 미국의 리버럴을 베껴서 담론과 정책을 만든다. 베껴서 수입하다 보면 괜찮은 것만 국경을 넘어오는 게 아니라 뻘짓도 같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미국 민주당 리버럴의 주류 노선으로 자리잡은 이른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구체적인 양상을 알게 되면 알게 될 수록 굳어지는 심증이 하나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퇴행들(ex: 여론재판, 사람들 겁주기, 사회적 검열 등)이 실은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게 한국에서 새로이 생겨난 경향이 아니라, 영미권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의 반복과 답습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들을 계속 보고 있다. 문제는 '선진국화=미국화'라고 인식하는 국내 지식인층의 오래된 습관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의 미국 따라하기를 '바람직한 사회적 변화'라고 간주하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사회적 쟁점이 되는 페미니스트들의 시위나 활동을 언론이 보도할 때,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비교하겠다며 미국이나 캐나다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이제 클리셰가 되었다. 결론은 한결같다. '그 나라에선 더하더라. 그러니 한국의 페미니스트 정도면 마일드한 편이고,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 흐름을 깨려면, 미국의 리버럴이 정체성 정치를 한답시고 만들어 놓은 사회적 변화가 얼마나 퇴행적이었는지를 알리는 데서부터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진보진영의 지식인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 사이에 그 실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를 위한 평등을 이야기하는 대신, 흑인/여성/성소수자 등의 '권리 옹호'에 집중하며 그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종주의자'나 '여성혐오자'로 낙인찍는 미국 민주당식 정치의 결과가 얼마나 자멸적이었는지를 똑바로 인식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 민주당의 길은 한국의 진보가 따라갈 모델이 아니며, 그들을 베끼다가는 시원하게 망한다는 점을 말이다. 미국판 '프로불편러'라 할 수 있는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Social Justice Warrior)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그 나라 진보파를 싫어하게 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진보'를 싫어하게 되며,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대중적 거부야말로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미국 정체성 정치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글 서두에 소개한 책은 상당히 유용한 도구다.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 번역된 제목이 촌스러워서 그렇지, 내용은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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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만 그런 게 아니야 :: 2018.06.02 18:16

정치부 기자들이 일반인으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원수들처럼 싸우다가도 카메라만 꺼지면 '형님, 아우' 하며 사이좋게 지낸다는데 사실이냐?"라는 것이다. 


답변은 이런 기사처럼 대체로 비슷하다. "그럴 때가 종종 있다"는 것. 이것이 너무나 낯선 광경이었기에, 정치부에 발령받은 직후엔 나름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회고하는 기자들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세간의 흔한 해석은 표리부동이다. 애초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여야 간에 죽일듯이 물어뜯고 싸우는 건 '쇼쇼쇼'에 불과하며, 사적으로 친한 기득권끼리의 적당한 나눠먹기가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냉소적 해석의 귀결은 자명하다. 역시 정치인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종자들이며, 그러하기에 신뢰해서는 안되는 부류라는 식의 결론이다. 정치혐오의 강화다.


과연 그럴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좀 다르게 본다. 정치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고, 한국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양쪽 모두 직업전문인이거나 전문가, 특히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된 전쟁은 상호 존중과 규칙의 인정 또는 심지어 기사도까지 배제하지 않는다. 폭력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는 제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장 르누아르의 평화주의적 영화인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이 보여주듯이 양차 세계대전 때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서도 여전히 명백하게 나타났다. 정치와 외교의 전문직업인들은 유권자들의 표나 신문들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을 때, 싸우러 나오기 전에 악수를 하고 싸우고 난 뒤 술을 마시는 권투선수처럼 상대편에 대해서 아무런 적의 없이 선전포고하거나 강화를 협상할 수 있다.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77페이지


홉스봄의 시야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사실 우리는 비슷한 광경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저 떠올리지를 못할 뿐이지. 예를 들어 유럽의 중세나 동아시아의 고대를 다룬 역사물(ex. 삼국지)에 등장하는 클리셰를 생각해 보자. 우리편 군사들의 목을 폭풍처럼 날려대는 적진의 장수를 앞에 두고 '적이지만 훌륭하군, 죽이기엔 아까워'라고 말하는 장군/기사 캐릭터, 어디선가 한두 번은 봤을 게다.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적군을 상대로도 그런 감상이 들 수 있는데, 기껏해야 의회에서 말로 싸우는 상대에게는 왜 그러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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