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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는 왜 '당 대표 김무성'을 바라지 않았나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압승이다. 청와대가 밀던 핵심 친박 서청원을 1만 4500여 표(8.1%) 차이로 제치고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기사 참조) 단순히 대표직만 김무성이 차지한 것이 아니라 비주류가 새누리당 지도부를 독식했다. 전 사무총장 홍문종을 비롯한 친박 인사들이 지도부 입성에 거의 다 실패했고 서청원만 초라하게 살아남았다.





김무성의 당권장악은 박근혜 집권기의 분수령이 될 만한 중요한 사건이다. 여당과 타협하거나 거래하는 대신 힘으로 눌러서 원하는 것을 얻던 박근혜의 통치전략이 1년 반 만에 파산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칫하면 벌써 레임덕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중요한 것은 김무성이 박근혜 대선 캠페인을 지휘했다거나, 김영삼을 따르던 민정계 출신이라거나, 역사관이 보수적이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의 아바타가 아니며 본인을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란 것이 중요하다. 이 정권에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된다. 박근혜처럼 야당은 물론 '자기편'인 보수와도 소통하지 않고 지시와 하달로만 통치하는 대통령에게, 여당 지도부를 심복으로 채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안 된다면 안정적 통치를 위한 기둥 하나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왜인지 살펴보자.


보통 대통령과 여당을 한 편으로 보고 "그놈이 그놈"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같은 집권세력이라도 재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단임제 대통령과 다음 선거에 또 나가야 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는 많이 다르다. 예컨대 총리나 장관 같은 국무위원 인사를 보자.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어찌 됐든 꽂아넣는 것이 우선이다. 임명한 후보자가 부패했다거나 능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여론이 좀 악화돼도 큰 상관이 없다. 대통령 본인이 선거를 또 나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여당 입장에서는 이런 후보의 임명을 지지했다가는 자신들이 다음 선거에 손해를 본다. 입장 차가 생기는 이유다.


모범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활발한 소통을 한다.[각주:1]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의가 되는 후보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식이다. 결정을 대통령과 여당이 같이 하니 책임도 같이 지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그런데 박근혜가 있는 한국의 정치는 이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재선을 걱정하는 의원들이 여론에 반응하며 정당(여당)을 움직이고 정당이 움직이면 대통령이 반응하는 회로는, 한국에서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청와대 혼자 결정한다.


박근혜의 말을 모두가 받아쓰는 국무회의 풍경이 보여주듯, 박근혜가 지금까지 한 것은 상향식 소통을 배제한 철저한 하향식 지시 위주의 국정이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면 불가능해야 하는 일이지만, 잠재적 반대자가 요직을 차지하는 걸 막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됐다. 여기서 말하는 잠재적 반대자는 야당이나 노조 등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수세력이나 여권 내부에 이견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보수가 51%를 장악한 사회에서는 그 51%만 확실하게 틀어쥐면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새누리당 지도부를 친박 일색으로 채웠던 것은 그래서 중요했다. 청와대의 뻘짓에 여당 내부에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게 당이라는 조직의 목소리가 되는 걸 차단했던 것이다. 지도부만 장악하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수기 여당을 만들 수 있다. 비단 여당뿐만 아니라, 집권세력 내부의 말 안 듣는 사람을 힘으로 눌러버리는 것이 박근혜 정권의 일관된 통치 스타일이었다. 극단적인 케이스로는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뒷조사해 사생활을 폭로해서 날린 사례가 있다.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경우다.


이런 스타일은 뭐랄까, 여당 국회의원을 글자 그대로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만들던 아버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각주:2] 실제로 박근혜가 정치를 배운 것도 그 시절이다. 영부인 육영수가 총탄에 희생당한 후 이른바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것이 박근혜였으니까. 보수를 힘으로 찍어누르는 작업의 사령탑으로는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이 많이 거론되는데, 그는 유신헌법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을 정도로 박정희 시절에 이미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수십 년 전 스타일이 요즘도 눈에 어른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무성이 당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김무성이 보수든 뭐든 간에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그가 당 대표가 되면 여당이 독립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러면 입법부를 청와대에 종속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청와대는 김무성의 대표직 입성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비리 전력자인 서청원을, 새누리당 당규를 어겨가면서까지 도로 데려와 공천을 준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김무성에 맞설 무게감 있는 다른 당 대표 후보감이 없었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본질적으로 유신 같은 독재의 방식이지 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닌 '힘으로 자기편 누르기' 통치가 지난 1년 반 동안은 먹혔다는 것이다. 비밀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있었다. 이것이 여당과 보수의 반발을 무마했던 동력이었다. 여당 의원 입장에선 박근혜의 철권통치(?)가 반가울 리 없지만 참아 줄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으니까 묻어가며 재선을 노리는 전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니 참을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무려 1만 4500표 차이로 김무성이 서청원을 제쳤다는 사실은, 이제는 여당의 핵심 지지층조차도 박근혜의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자기 편을 힘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박근혜식 통치 전략이 1년 반만에 파산한 것이다.


후유증은 간단히 극복되기 어렵다. 만일 박근혜가 반대파의 이견을 일부 수용하며 다독이는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통령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힘으로만 누르다가 힘에서 밀려버린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남는 건 권위의 실종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청와대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대단하지 않을까. 이제는 여당에서 불만의 물꼬가 터질 것이 뻔한데 차기 대선을 노리는 김무성이 그것을 대표하길 꺼릴 이유도 없다.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이 안 될 상황이다.


박근혜-김기춘이 남은 3년 반을 무난하게 보내려면 엄청나게 달라진 환경에 급하게 적응해야 한다. 본인들의 권력이 축소되었으며 김무성을 비롯한 여당이 이제는 지시가 아닌 협상의 대상이 됐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게 과연 되겠냐는 것.


지금 우리가 보는 광경이 무엇이냐 하면, 독재 시절에 정치적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어쩌다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 됐기에 겪는 문화 지체 현상이다. 한 인간의 사회심리적 문제의 해결 양상에 따라 많은 것들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좀 슬프지만.






  1. 의원내각제의 경우는 대통령 대신 총리가 된다. 내각제에서는 총리가 곧 여당의 당수이기 때문에 애초에 여당과 행정부 수반의 이해관계가 다를 이유 자체가 없다. [본문으로]
  2. 박정희 집권기의 한국은 여당 의원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야당이 제기한 안건에 찬성표결을 하면 정보기관에 끌고가서 고문을 하는 나라였다. 공화당 중진이었던 김성곤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콧수염을 반을 뽑히고 정계에서 퇴출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40여 년 전의 한국은 그런 나라였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183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