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조선일보는 해도 되지만 김기식은 안 된다?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전방위적 사퇴 압박을 보고 있으면 어처구니가 없다. 역시나 한국 사회엔 얼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김기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야당과 언론 얘기다. 


김기식이 과거 의원시절에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온 게 뇌물이고 부패이니 사퇴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근데 이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 잘라야 할 사람은 김기식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야당)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이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피감기관이 돈을 대는 외유성 출장이 관행이었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고, 마침 오늘 와대 대변인이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니 이 글에서는 자세히 논하지 않겠다. 구설수에 오른 그 국회의원들 중에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있다는 사실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 글에서 주로 소개하려는 건 기자들의 '내로남불'이다. 기자들이야말로 남의 돈으로 즐기는 해외출장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언론계 사정에 조금이라도 밝은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의 출입처에서 기자들 공짜로 단체관광 시켜주는 건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출입처가 '해외취재'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비행기삯과 체류비용을 지불하면, 기자들은 그 돈으로 며칠씩 해외로 나가서 하루 이틀 공식행사 참여한 뒤 남은 기간 관광 다니고 쇼핑하러 다녔다. 그 대가로 출입처에 유리한 기사를 써 주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적어도 김영란법 제정 이전까지는 아주 확고하게 자리잡은 관행이었다. 한국의 기자들은 수십년간 이래 왔다. 1990년대에 작성된 아래 기사 2개를 참고해 보라.


업체지원 기자 해외취재 무엇이 문제인가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282


언론도 돌 던질 처지 못된다

http://www.sisajournal.com/journal/articlePrint/105194


몇 줄만 발췌하자.


고위공무원만큼이나 ‘관행에 따른 특전’을 누리고 있는 직업이 각 부처에 출입하는 기자이다. 서울주재 한 서방특파원은 정부의 돈으로 해외취재를 하고 정기적으로 취재비(촌지)를 받는 한국기자들의 관행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각주:1] 그에게는 처음 듣는 얘길 수 있으나 이 같은 무료해외여행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에겐 ‘연중행사’에 속한다. 특히 경제부처 기자의 경우 타부처 출입기자에 비해 비교적 해외여행 기회가 많다. 반면 최근 외유케이스가 별로 없는 모부처 출입기자의 일부는 문교부가 주관하는 학생들의 동구권 연수코스에 다녀온 ‘꼴불견’도 연출했다. 더욱이 기자단이 단체로 해외취재에 나갈 경우 그들이 소속된 언론사가 영세해 지원을 못하게 되면 여비를 기자 스스로 해결토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자는 해당 부처나 유관기관·기업에 개별적으로 손을 벌려 뒤늦게 말썽을 빚는 경우도 있다. 


<출처>

언론도 돌 던질 처지 못된다

각 부처 출입기자 ‘공짜여행’ 다반사…장·차관도 유관단체에 손벌리기 일쑤

시사저널 변창섭 기자 | 1991.02.07



이건 옛날 얘기일 뿐이고 요즘은 달라진게 아니냐고 묻는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답은 '아니오'이다. 2년 전(2016년)에 작성된 다음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자들이 문제삼는 김기식 출장보다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니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보험사 돈으로 출장 간 기자들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

http://www.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15003#cb


보험협회는 왜 기자단 해외 취재에 돈을 댔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4985&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웬만하면 기사 전문을 읽어보길 권하지만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6년 5월 손해보험협회가 출입기자단 기자들에게 1인당 400만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돈을 대서 8박 9일 유럽출장을 보내줬다. 협회가 밀고 있는 보험사기 방지법 강화를 위한 취재 협조를 위해서다. 그런데 일정을 들여다보니 취재에 필요한 시간은 1~2일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밀라노, 베네치아, 파리, 베를린 등에서 관광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그렇게 공짜 여행 다녀온 기자들 중 일부는 보험협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썼다. 대가성이 의심된다. 언론윤리강령 위반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이것 말고도 비슷한 예를 찾으려면 끝이 없겠지만 아쉽게도 기사로 보도된 사례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 언론계 특유의 '동업자 정신' 때문에 원래 내부비판 기사 자체가 많지 않다.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손해보험협회가 비용을 댄 이 외유성 해외출장에 참여한 기자들의 소속은 국민일보, 뉴시스,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부산일보, 서울경제, 서울신문, 세계일보, 이데일리, 조선일보, 파이낸셜뉴스, 한겨레, 헤럴드경제, CBS, MBC, YTN 등 16개 언론사이다. 최근 김기식 관련 보도들을 관심있게 본 독자라면, 이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언론이 강경하게 김기식 사퇴를 주문하고 있다는 점을 알 것이다. 한겨레 정도만 사퇴에 유보적인 입장이지 나머지 언론의 입장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한국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이라고 본다. 이 기자들이 한 일이 김기식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뭔가? 없다. 비용을 대는 주체가 '피감기관'에서 '출입처'로 바뀌고, '해외 출장'이 '해외 취재'가 된 것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수십년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왔던 짓을 김기식이 하니까 벌떼같이 달려들어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는다. 마치 자신들은 깨끗한 양, 김기식을 단죄할 도덕적 자격이 있는 양 호통을 치는 게다. 공짜로 여행 보내준 댓가로 출입처에 유리한 기사를 써 준 사람들이 말이다.


김기식 건을 가장 먼저 터뜨려 의제화하고 며칠간 정국을 주도했던 '1등신문' 조선일보에 나는 묻고 싶다. 며칠째 1면 기사에 사설까지 써 가며 김기식의 사퇴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귀사는 남의 돈으로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외유성 해외취재'를 다녀온 소속기자와 그걸 승인한 데스크를 자를 용의가 있는가? 만약에 그럴 의사가 없다면, 귀하들은 책임지지 않는 문제를 김기식만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의 돈으로 가는 출장을 기자는 가도 되는데 김기식은 가면 안되는가?


조선일보를 비롯해 김기식 사퇴론을 외치는 언론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보탠다. 나도 그들의 의견을 좇아 김기식 사퇴하라고 돌을 던질 생각이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해당 언론사들이 자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해외취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출입처에서 보내준 공짜 여행을 얻어먹었다고 적발된 기자들을 몽땅 해고하기로 결의한다면 말이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설마 공론장의 수호를 담당하는 고매한 저널리스트들께서, '우리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은 김기식보다는 낮은 것'이라는 택도 없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에이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분발을 기대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았던가. 남의 눈의 티를 빼라고 하기 전에 제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1. 발췌문에서는 '정부의 돈'이라고 써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직접 내는 돈이라기보다는 각 산업별 협회 등이 마련한 돈을 뜻한다. 정부가 그들로 하여금 돈을 내게 만들었기 때문에 '정부 돈'이라고 쓴 것으로 보인다. 기사 본문을 읽으면 문맥상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