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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노출을 줄이면 성범죄가 줄어들까? 통계는 다르게 말한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슬럿워크(slut walk) 시위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넓은 것 같다. 고작 100명 정도 참여한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관련 멘트들이 종종 눈에 띄는 걸 보면 말이다.

시위를 둘러싼 주된 논점 중에 하나는, 한국의 슬럿워크가 모방한 원조시위, 즉 캐나다에서의 슬럿워크를 촉발한 경찰관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를 두고 형성된다. "성폭행을 막기 위해 여자들은 헤픈 여자(slut)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던 그의 말을 어떤 사람들은 '마초의 개념없는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블로거 sonnet 님(이하 존칭 생략)의 입장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슬럿워크를 총기관련 권리옹호운동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문제의 경찰관이 그렇게까지 욕먹을 발언을 한 게 아니라고 변론하고 있다. sonnet의 논지에 따르면, 문제의 캐나다 경찰관은 여성들이 야한 옷을 입을 권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범죄를 줄여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대증요법' 차원에서의 처방을 제시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야한 옷을 덜 입는 게 성범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경찰관의 업무는 범죄를 줄이는 것이지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이 아니며, 후자는 경찰이 아니라 인권위의 역할에 가깝다고 그는 말한다.

필자는 경찰관의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sonnet의 규정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에 대한 그의 옹호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경찰관과 sonnet이 제시하는 그 '대증요법'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야한 옷 안 입어도 성범죄 안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왜일까? 애초부터 성범죄자들의 범죄 동기에서 여성의 노출도는 별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sonnet, 캐나다 경찰관,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의 인식과는 달리 여성 옷의 노출 정도는 성범죄자들의 동기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통념과는 달리, 야한옷이 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면 성범죄자가 늘더라는 경향성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도, 여성학(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눈곱만한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유하는 명제다. 그 근거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바로 성범죄 발생건수에 대한 계절별 비교이다. 나는 sonnet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단 사람들 중 한 명도 이 지점을 짚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좀 놀랐다. 이건 sonnet과 같은 주장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반론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여성들이 노출도가 높은 옷을 빈번히 입고 다니는 계절은 여름이다. 따라서 sonnet과 경찰관의 주장이 맞다면, 여름철 성범죄의 발생건수는 봄, 가을, 겨울에 비해 유의미하게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예를 들어 강간 건수가 일년 내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노출도와 성범죄 발생 간에도 별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통계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 표를 보자.

<2002~2007년 강간범죄 발생건수에 대한 계절별 비교>

위 표는 통계청 홈페이지(kosis.kr)에서 제공받은 경찰청 통계(2002~2007년 전국 월별 강간범죄 발생건수)를 토대로 필자가 계절별 합계를 산출한 것이다. 성범죄와 강간의 범주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경향성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라면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 판단한다. 또한, 통계처리의 편의를 위해 4계절의 구분은 1년을 3개월씩 4조각으로 자르는 방식을 취했다. 6~8월을 여름으로 간주하고, 그 뒤 3개월은 가을, 그 뒤 3개월은 겨울로 치는 식이다.

보다시피 연중 여름(6~8월)에 일어나는 강간범죄의 비율은 전체의 28.0%로서 봄(25.2%)이나 가을(26.7%)에 비해 약간 높긴 하지만 그 차이는 1.3~2.8%로서 크지 않다. (이를 큰 차이라고 해석하고 싶은 이들은. 나시T+하의실종 패션을 입은 여성을 본 경험이 계절별로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차이를 위 표의 수치 차이와 비교해 보라.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겨울철(20.1%)의 비율이 작은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추위에 따른 야외활동 감소가 원인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 사람들과의 접촉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범죄에 휘말릴 확률 자체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가령 '겨울철 강간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노출도와 성범죄율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라고 해석하면서, 필자가 스스로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엉뚱한 가설을 세웠다는 식으로 반론할 수도 있을 게다. 이런 반론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2가지로 요약된다. ①일단 겨울만 제외하면 봄, 여름, 가을의 차이는 미미한 수준임이 중요하다는 것과 ②겨울철 강간 건수가 두드러지게 적은 건 다른 강력범죄(살인, 강도, 폭행, 상해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추우면 범죄 자체가 줄어든다는 거다.

진짜 그렇냐고? 아래 표를 보자.

<2002~2007년 범죄별 발생건수에 대한 계절별 비교. 살인/강도/방화/폭행/상해/협박/공갈/약취와유인/체포와감금에 관해>

빨간 글씨를 보며 확인할수 있듯이 살인/강도/방화/폭행/상해/협박/공갈/약취와유인/체포와감금 등 열거된 강력범죄 항목 전부에서 범죄발생이 겨울철에 현저히 낮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은 번갈아가며 123등을 차지하고 있으며 비슷한 수준이다. 

글이 길었다. 결론을 내자.

이상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의 노출 의상과 성범죄 발생률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따라서 '성범죄 당하기 싫으면 slut 같은 옷을 입지 말라'는 캐나다 경찰관의 주장은 대증요법 차원에서도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경찰이 범죄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면 '무능함'에 해당한다. 나는 그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비판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아울러, 총기소유권 옹호와 슬럿워크 지지는 구분되어야 한다. 총기소유를 규제함으로써 총기관련 범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여성들에게서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강탈한다고 해서 성범죄를 줄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과 옷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성범죄자의 동기를 성적 차원보다는 통제력(권력)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 관련 학계의 주된 흐름이다. 성범죄는 단순히 '꼴려서'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을 마음대로 유린함으로써 정복의 쾌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본질적 동기가 있다는 이야기다. 직장 등의 공동체에서 명령하기보다는 명령받는 지위에 속하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한 사람일수록 보상심리가 강해 성범죄에 많이 연루된다는 식의 연구는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군대 내 남성간 성추행은 성폭력이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인데, 늦은밤 귀차니즘의 압박 때문에 상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