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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 어떤 이유

이번 인터뷰에 응했던 여러 고용주-노동자, 재단사들은 봉제업이 영세 사양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압박을 많이 받고 또 노동력 부족으로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 문제와 불법 노동자 문제는 그들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어려움이고 관심사였다. 그들이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사업자 등록을 할 경우 고용, 산재, 건강, 국민연금과 같은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들은 법의 단속과 공권력을 두려워한다. 이들이 스스로 기꺼이 불법적이기를 선택하는 데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들에 대한 단속은 경찰 외사과 소관인데, 투망식으로 잡아가기 때문에 일제 단속이 시작된다는 정보가 전달되면 일하던 노동자들은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불법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체포돼도 이들 고용주들은 이를 막을 아무 대책이 없다. 

봉제 산업이 적지 않은 고용을 흡수하고 도시 서민가구의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에도, 이 부문의 기업주-노동자들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세금도 없고, 보험도 없이 공적 제도 밖에 존재하는 얼굴 없는 사회경제적인 집단이다. 그동안 정부의 산업정책 측면에서 봉제 산업은 버려진 산업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여러 봉제 공장 인터뷰에서 공통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중앙정부이든 지방자치단체이든 정부와 관,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과 냉소적 태도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정부에 대해 나타내는 태도랄까 하는 것은 그들의 요구와 의사를 대변해 주고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공적 기관이 아니라, 영세 소기업으로서 약자인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권력기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국가권력에 대한 강한 피해 의식은 이들의 마음속 밑바닥을 흐르는 강력한 정조이다.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이 갖는 정부에 대한 이미지는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 최장집, 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 없는 생산자들(본문 링크)

정말 훌륭한 글이다. 이런 종류의 실태조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하고, 학계에서 진지한 주제로 취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