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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여자 앞 흡연이 성폭력'은 왜 다수의견이 되었나

본인의 이름보다는 '정치인 유시민의 딸'로 더 많이 알려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유모씨가 최근 학생회장직을 사퇴했다. 근데 이유가 좀 희한하다. 성폭력의 '2차 가해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학생회장직 수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데, 그런 낙인이 찍힌 이유는 여자 앞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 성폭력은 아니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란다. 자세한 내용은 이런 기사저런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 사건은 마초가 아닌 사람들, 합리적인 사람들조차도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는 경우가 왜 많은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칭 ‘피해자’가 주장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적 상처를 ‘성폭력’으로 간주하고 이런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생기면 ‘2차 가해자’로 낙인찍는 사건은, 성폭력에 대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을 내면화한 학생운동/사회운동 진영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이번 건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운동권과 인연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고 기이한 것이며, 그렇다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평판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대중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감을 정당화할 완벽한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소위 ‘피해자 중심주의’라 불리는, 성폭력을 바라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진영 안에선 사회적 자살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학생운동조직의 상층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부터, 조직에 '성폭력'으로 신고된 사건의 처리를 맡게 됐을 때 느낀 곤혹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보기엔 전혀 성폭력이 아닌데 그런 의견을 냈다간 매장당할 것 같았다는 회고였다.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의 사퇴 사건은 이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내면화한 학생운동 혹은 사회운동 진영에선 자칭 '피해자'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는 일이 흔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잘못 말했다간 순식간에 고립되고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폭력 개념이 지닌 문제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건 문제의 심각성이 덜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너무 마이너한 존재라서 주류 사회의 법과 제도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그저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주류 사회에서는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로 소수파라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영향력이 통하는 유일한 동네인 진보적 학생운동/사회운동에서는 절대적인 도덕적 권위를 획득했기에 감히 문제제기할 사람이 없었다. 


이런 원인들 때문에, 성폭력에 대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해방식과 처리방법에 대한 정교한 이론적/논리적 비판이 수행된 적이 별로 없다. 간혹 있었던 비판들은 산발적이었고 조직되지 못했기에 담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사실상 '비판의 무풍지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십수년간 방치된 결과는 참혹하다. "여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성폭력"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경이 된 것이다.


문제는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되려 악화되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이 대학에 처음 발을 붙이던 시기인 1990년대만 하더라도, 당시의 성폭력 개념은 지금과는 달랐다. 자칭 '피해자'가 호소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적 상처를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사고방식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주류가 아니었다. 당시에 '언어적 성폭력'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언사였다. 이를테면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야 한다"라던가, "MT를 가면 설거지는 여성이 하라"는 식의 발언들 말이다. 이런 성폭력 개념도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해당 발언들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강간이나 성추행 같은 '성폭력'과 동일한 범주로 묶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 개념 없는 말 좀 했다고 '성폭력 가해자'라 지칭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의 범주를 축소하기는커녕 확장해 버렸다. 이 사람들은 특정 사건이 성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느꼈는가'로 삼고, 이른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나 제3자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를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식이면 성폭력으로 규정될 수 있는 범주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정말 난감한 경우는, '성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사건들이 진보적 정치단체나 사회단체의 공식 기구에 접수되는 경우다. 자칭 '피해자'들이 소속 단위의 공식기구에 사건을 신고하고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다. 진보진영 사람들은 대체로 경찰이나 검찰과 같은 국가기구를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성폭력 처리과정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이 소속된 진보단체에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에는 사회의 상식으로는 그저 연인 간, 혹은 지인 간의 감정적 다툼에 불과한 사건인데 이성 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로 '성폭력' 사건이라며 고발한 경우들이 있다. 문제는 이럴 때도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는 것. 해당 단체들은 대부분 성향이 진보적이라 성폭력 사건의 해결원칙으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사고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관념을 적용하면 자칭 '피해자'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무처리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데 자칭 '피해자'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럴 때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소신을 표현함으로써 동료들로부터 고립될 위험에 처할 것인가, 아니면 소신을 숨기고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할 것인가?" 여기서 전자를 선택하면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처럼 직을 잃고 왕따가 될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 중심주의'니 '2차 가해'니 하는 개념들을 폐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는 한 이번과 비슷한 사건들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그러려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폭력 개념에 대한 정교한 지적/이론적 비판이 등장해 줘야 하는데,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십수년간 그런 일이 잘 안 됐던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 2014.05.29 15:09

    이 글을 2년 후에야 보고 있는 게 아쉽네요.
    페미니즘의 개념과 정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세히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피해자 중심주의적 사고와 논리, 성폭력 개념 확장 등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한 건 아닌가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봅니다.

    • 시스루 2014.05.29 17:25 신고

      외국 사례까지는 열심히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저도 그런 거 누가 좀 찾아보고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될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