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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해경 처벌론에 동의하는 이유

1. ‘해경이 진입했으면 다 살릴 수 있었다’는 검찰발 경향신문 기사를 두고 요란한 비판들이 보이는데, 영 아니지 싶다. 해당 기사엔 별 문제가 없다. JTBC 등에서 이미 한참 전에 해서 호응을 받았던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2. 경향신문이나 검찰은 "왜 해경은 목숨을 걸고 구조를 하지 않았냐"고 탓하는 게 아니다. "큰 위험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왜 안 했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다. 해경이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고 보는 데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3. 당시 선박의 기울기가 45도였다는 점을 근거로 선내진입이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고 하는 이상한 주장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몸으로 입증하신 산 증인이 있다. 다름아닌 세월호의 1등 항해사다.

 

4. 열흘 전에 나왔던 이 JTBC 기사부터 다시 보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039987 1등 항해사의 행적에 주목하면 되겠다. 그렇다. 구해야 할 아이들은 안 구하고 휴대전화나 가져오기 위해 배 안에 다녀와서 유명해진 바로 그 사람이다.

 

5. 손석희에 따르면 그는 ‘탈출하기 직전’에 침실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가져왔다. 선원들이 구조된 시각이 9시 40분 전후이고, 해경의 첫 도착 시각은 9시 30분경이니, 그가 침실에 다녀온 시각은 해경의 도착과 큰 차이가 없을 게다.

 

6. 문제는 이자의 침실이 선내방송이 가능한 조타실에서 불과 몇 미터 옆이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를 참고할 것. 선박 내부구조는 영상의 3분 30초경을 참고하면 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040171

 

7. 그 몇미터 떨어진 방에 가서 ‘당장 탈출하라’고 방송하면 아이들이 살 수 있었는데, 그걸 안했기에 1등 항해사는 욕을 무더기로 먹었다. 이런 비판은 당연히 정당하다. 그리고 이 비판은 항해사 뿐만 아니라 해경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다. JTBC 기사에도 관련 언급이 있다.

 

8.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당시에 1등 항해사가 침실까지 갈 수 있었다면 해경이 그 옆의 조타실까지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고작 휴대전화를 가지러 갔던 걸 보면, 선내진입에 그리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9. 혹자는 반론할 수도 있다. 손석희는 거짓말쟁이이며 그가 말한 ‘직전’은 과장이라고. 1등 항해사가 침실에 간 순간은 해경 도착보다 훨씬 앞선 시각이었고, 선체 기울기가 훨씬 완만했다고. 허나 이런 반론은 다른 정황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10. 1등 항해사가 침실에 갔다온 정확한 시각을 검찰은 알겠지만, 이를 명시적으로 밝힌 기사는 없다. 다만 퍼즐의 조각을 이어다 붙임으로써, 대략 언제쯤이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음을 보자.

 

11. KBS에 따르면 이미 9시 17분에 세월호가 50도 이상 기울었다고 진도VTS에 교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022680

 

12. 여기서 50도란 수치는 어림짐작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40도는 넘었다고 봐야 할 게다. 배에는 기울기를 표시하는 클리노미터란 장치가 있는데, 표시 가능한 최대 기울기가 40도다. 바늘이 최대까지 간 것을 보고 50도쯤 되리라 짐작한 듯하다.

 

13. 시사인에 따르면, 1등 항해사가 회사와 처음으로 연락이 닿은 것은 9시 15분으로 윗 시간인 17분과 불과 2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시각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13424

 

14. 그가 침실에 도착한 시각을 아무리 빠르게 가정해 봐야 이 시각 근처일 게다. 어떻게든 회사와 빨리 연락하려고 다시 침실까지 돌아갔던 사람이니 만큼, 휴대폰을 찾은 시각과 통화를 시작한 시각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추론이다

 

15. 만일 회사측과 통화한 다음에 휴대폰을 놓고 나왔다가 침실로 뒤늦게 돌아가 다시 들고 나오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그가 침실에 도착한 시간은 더 늦어지게 된다. 이 경우 당시의 배 기울기는 30분경의 45도에 더 근접하게 된다.

 

16. 정리하면 이렇다. 해경이 도착한 시각인 9시 30분경의 선체 기울기 45도는, 1등 항해사가 침실에 돌아갔던 시각의 기울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1등 항해사가 선체진입이 가능했다면, 해경도 가능했던 거다

 

17. 경향신문 기사의 다른 버전을 보면 상황이 좀 더 명확해진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75756 ‘큰 무리 없이’ 선체 난간을 타고 오르는 탑승객이라던가, 44분경에도 선체에 오르는 해경의 모습에 대한 묘사들이 나온다.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18. 해경은 선장과 선원을 구하던 그 시각에 단 1명이라도 조타실에 파견해 ‘당장 나오라’는 방송을 했으면 수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 규모가 ‘전원’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상당수가 살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19. 해경은 세월호의 선박 도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타실의 위치를 몰랐다고 볼 수도 없다. 6번에 링크한 기사에서도 나오듯,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교신을 통해 알고 있었다.

 

20. 해경이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수백명이 죽었다. 이걸 ‘직무유기’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에게 형사책임 묻는게 정말 오버인 걸까?

 

21. 오늘 봤던 가장 황당한 트윗은 스키장 가봤으면 45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경사인지 알 거라며 떨던 호들갑이었는데, 어이가 없는 이야기다. 주변에 발판으로 쓰고 손으로 잡을게 널린 선박 갑판과, 맨땅밖에 없는 스키장 슬로프가 같나?

 

22. 오늘자 경향신문 기사는 이미 JTBC가 최초로 알리고 다른 언론들이 베끼며 널리 퍼졌던 소식에 딱 한가지 팩트를 추가한 게 전부다. 검찰도 그 견해에 동의한다는 것.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소식에 왜 이제 와서 열을 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23. 정리하자. 선내진입을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수백명의 목숨을 수장시킨 해경은 무슨 ‘희생양’ 같은 게 아니다. 직무를 유기한 것이 명확한 자들이다. 이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시도에 대해 필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