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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교육감 선거, 왜 보수가 분열로 망했나?(2)

[편집자 주] 이 글은 2014년 교육감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으로, 두 편으로 나누어 싣는 글의 2편에 해당합니다. 1편은 진보교육감이 전국적으로 당선된 원인을 짚는 글입니다. 2편에서는 왜 보수가 아닌 진보교육감만 단일화에 성공하는지 원인을 살펴보고, 교육감 정당공천제 논의를 다룹니다. 가급적이면 1편과 본문을 읽기 전에 포스팅 '고승덕은 어떻게 지지율 1위 후보가 되었나'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본문은 해당 포스팅의 문제의식과 분석방법을 이어받아 작성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1편에서 이어쓰는 글입니다)





5. 

진보교육감의 전국적 압승이 단일화 효과 때문이라면, 이쯤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그 좋은 단일화를 왜 보수는 안 하고 진보만 한 걸까? 원래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가 아니었던가? 왜 교육감 선거에선 이런 속설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교육진보 진영부터 살펴보자.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단일화는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다. 소위 '원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무슨무슨 '원탁회의' 같은 테이블을 꾸려서 예비 후보들과 접촉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다른 경로로 독자출마하는 후보가 있으면 매섭게 압박하는 풍경은 이미 익숙한 전통이 됐다. 올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뒤늦게 독자출마를 선언했다가 비난을 받고 사퇴했던 윤덕홍의 경우가, 이 압박의 무게를 보여준다. '원로'들께선 비단 교육감 후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들 간의 단일화까지도 조율할 정도였으니, 나름의 노하우도 쌓였을 게다. 


'진보' 타이틀을 달고 교육감이 되려는 예비후보에게 이 압박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교육진보 진영에는 감히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다간 '이기적인 출세주의자'로 찍혀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소위 민교협과 전교조라는 양대 인맥으로 대부분 포괄이 가능할 정도로 바닥이 좁아서 누가 누구인지 한두 다리 정도만 건너면 서로 알 수 있는 게 이 집단이다. 이 정도로 인적 연관성이 높은 커뮤니티에서는, 왕따가 된다는 것은 '뭐 어쩌라고'라고 쿨하게 반응할 만한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본인의 단일화 거부와 독자 출마 때문에 자기 진영 후보가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역적'이 돼 버리고 주변의 지인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다. 이념적 동질성이 강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동기로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편'의 승리를 가로막아 내가 바라는 세상을 오지 않게 만드는 놈은 공분의 대상이 된다. 


교육진보 진영의 단일화 압박이 얼마나 황당할 정도로 강력한지를 가늠해 보고 싶다면, 지난 2010년 서울 교육감 선거를 보면 된다. 곽노현이 당선됐던 당시 선거에서 같은 진보진영 후보 박명기가 여론조사에서 밀려 선거를 하다 말고 사퇴했다. 문제는 중도사퇴할 경우 그때까지 지출한 억단위의 선거비용을 국가로부터 보전받을 길이 막힌다는 것이었다. 완주해서 몇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기만 하면 돈을 되찾을 수 있으며 제한선보다 높은 지지율도 확보하고 있는데, 돈을 포기하고 사퇴를 했다. 곽노현의 증언에 따르면, 박명기는 그 선택 때문에 사채업자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각주:1] 세상에, 빚쟁이에 쫓기는 몸이 되더라도 왕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조폭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좋게 말하자면 진보교육 진영이 세력으로(!) 조직된 정도가 그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거다. 사퇴하는 당사자들이 불쌍하니 해결책을 고민해 봐야 할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진보 교육감 후보에 표를 던지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편한 일인 것이다. 




6. 

한편, 교육보수 진영의 상황은 진보와는 전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보수 진영에는 난립하는 후보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마이너 후보의 사퇴를 강제할 만한 힘을 가진 주체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교육감의 단일화를 주도한 것은 '대한민국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라는 조직이었는데, 주요인사들을 살펴보면 퇴직한 교육 관료거나 '아스팔트 보수'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없다. 아무리 문용린을 서울시의 '유일한' 보수교육감 후보라고 선언해 줘도, 고승덕이 무시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되려 고승덕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자, 아스팔트 보수 중의 일부는 고승덕 지지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오합지졸인 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이것은 한국의 보수정치인이라는 집단이 갖는 특징과 관련이 있다. 진보와 비교했을 때, 이들은 일단 이념을 중시하는 정도가 덜하고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외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이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는 세상을 구원할 어떤 보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권력까지 누려보고 싶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이익으로 뭉친 집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각계에서 방귀 좀 뀌다가 온 사람들의 집합이라서, 운동권 바닥에서 공통적으로 시작한 진보에 비교하면 출신 배경이 다양한 편이다. 즉, 서로 안 친하다. 


이런 조건에서는 '왕따의 위협' 따위는 별 거 아닌 문제가 된다. 어차피 서로 소 닭보듯 하던 사람들이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고, 원래 사회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인물들이 많다보니 먹고 살 걱정은 안 한다. 애초에 세상을 바꿔보자고 정치하는 게 아니다 보니 '보수'가 지든 말든 큰 신경 안 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지, '우리 편'의 대의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선거비용 돌려받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후보를 사퇴해야 하겠는가? 난립한 보수교육감 후보들이 완주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래 보수가 한국정치에서 막강한 조직력과 일사불란함을 자랑해온 집단이 됐던 건, 보수정당이라는 강력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회의원 되고 싶을 때 출마할 수 있는 정당이 여러 개 있는 '개혁+진보' 진영과는 달리, 보수 타이틀 달고 국회의원 되려면 선택지는 새누리당 하나밖에 없다. 다른 길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누리당의 존재감이 막강하다. 


새누리당은 이익으로 뭉친 보수집단답게, 보수정치인들의 이익을 조율함으로써 교통정리를 하는 방식을 발달시켜 왔다. 이 방식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2013년 10월 화성갑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보면 도움이 된다. 박근혜 정권은 당시 6선이던 친박계 거물 서청원을 지역구 공천했다. 문제는 그가 공천헌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어서 '비리 전력자를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당규를 거스른 결정이 됐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새누리당에서 논란이 불거졌고 해당 지역구에서 출마를 노리던 전직 의원 김성회가 대놓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성회가 며칠 그러다 잠잠해지고, 나중엔 서청원의 손을 잡고 사진도 찍어 가며 공개지지를 하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뒤 김성회가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천을 양보하는 대가로 받은 '낙하산 인사'라는 평이 떠돌았다. 보수가 어떻게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평가와 함께.[각주:2]




그런데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특유의 이해관계 조율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정당의 선거개입을 철저하게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보수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당연히 '거래'를 제안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주체가 판을 주도해야 하는데, 정당이 빠지면 이게 될 리가 없다. 


비공개로 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당신이 보수 교육감 후보라고 생각해 보자. 후보를 사퇴하면 나중에 한자리 챙겨주겠다는 밀약을 보수정당의 누군가로부터 제안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믿고 사퇴할 수 있을까? 못한다. 그랬다가 들통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가 그 위험을 감수하고 약속을 지킬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애초에 거래가 작동하기 힘든 환경인 게다.


결론은 이렇다. 원래 정부가 임명하던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뽑고 공천을 비롯한 정당개입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한 결과, 교육감 선거가 진보에게 상당한 유리한 환경을 구조적으로 제공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설계한 법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노리고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신의 한 수'가 돼 버렸다. 그 사실이 교육감 직선이 실시된 지 7년으로 접어드는 해에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상 참 재미있다. 




7.

진보교육감의 압승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자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느니,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광역단체장과 러닝메이트로 뽑게 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이 고개를 든다. 주로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띄우는 의제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의 문제점을 굳이 길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선거 지고 나서 게임의 룰을 바꾸자고 하는 볼멘소리를 진지하게 다룰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감 정당공천 실시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할 부분이 좀 있어 보인다. 쟁점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인 데다, 자칫하면 새민련이 언젠가는 동의하면서 실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교육감의 정당 공천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단순히 보수의 이익만을 위한 논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간단치가 않다. 특히나 한국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와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며 좋은 정당의 힘을 빌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 일각의 조류에서는 [각주:3], 교육감의 정당공천 금지가 과연 바람직하냐는 문제제기가 종종 나온다. 


교육진보 진영의 인사들은 대부분 교육감 정당공천에 대해 부정적인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자신들의 '파이'를 정당이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손익계산 정도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불안감이 존재한다. 정당공천을 허용해서 교육감 선거의 중심이 운동 진영이 아닌 정당으로 넘어갔을 때, 지금까지 그들과 진보교육감이 쌓아올린 정책적 성과들이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새민련을 못 믿는다는 것이다. 


불신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인 맥락과 이유가 있다. 진보교육감들이 지금까지 어렵사리 일궈낸 행정 성과들은 애초에 시작할 때부터 민주당의 전통적인 노선이나 정책과는 상관없는 독자적인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보편적 복지 논의를 열어젖힌 히트상품인 무상급식은 민주당이 아니라 김상곤이 제기한 것이었으며, 현재 진보교육감들의 핫한 아이템이 되고 있는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다. 새민련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집권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운동진영은 NEIS 등의 사안으로 정부와 싸웠다. 그 시절 정부에 대한 기억과 평가가 좋지 않다.


필자 역시도 진보교육감들이 만든 성과의 상당수는, 민주당을 배제한 교육감 직선제가 없었다면 현실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었다. 민주당의 교육정책 방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부가 중점적으로 다룬 의제들을 보면 각이 잡히는데, 진보교육감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좀 많이 달랐다. 이해찬을 비롯한 당대 교육부 장관들이 열심히 추진했던 것은 이른바 '쉬운 수능'이라던가 '3불 정책' 유지 같은 것이었다. 쉽게 말해 대학교 입학시험 제도에 손을 대서, 부자의 자식들이 학벌세습하는 경향에 제동을 걸어보자는 취지의 정책들이었다. 다소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게다. 보수정권의 교육정책 방향이 '강남 아이들이 SKY 많이 가게 하는 것'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방향은 '강북/지방 아이들도 SKY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노무현 정당과 한나라당은 교육을 '지위 상승을 위한 계급투쟁의 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나, 그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를 놓고 갈렸던 것이다.


교육운동 진영은, 특히 김상곤을 중심으로 한 진보교육감들은 이런 인식과는 거리를 뒀다. 학교에 필요한 변화는 단순히 '빈자의 아들딸이 신분상승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고 보았다. 


진보교육감이 학교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우선적인 변화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등교할 마음이 드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단순히 입시제도를 건드리는 정도를 넘어, 학교 문화를 바닥부터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학교 문화를 바꾸기 위한 핵심 과제가 학교의 민주화라고 생각했기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서 학교 현장의 인권 감수성을 높였다. 그리고 교장의 전횡이 통하지 않는 혁신학교를 만들어서 '교무실을 민주화'했다. 요컨대 진보교육감이 우선적인 과제로 간주했던 정책들은 노무현 정부나 민주당이라면 반대는 하지 않았을지 모르되,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들이었다. 


진보교육감의 독자적인 의제들을 추진한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길게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상급식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됐고, 혁신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 만족도가 일반학교보다 모든 면에서 높다는 연구결과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각주:4] 경기도의 경우 혁신학교가 근처에 생긴다는 이유만으로도 아파트 가격이 뛴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진보교육감이 이룬 성과들은 단순히 정치적 선전거리 정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실제로 이룩한 소중한 변화인 것이다.


이쯤에서 본론인 교육감 정당공천제로 돌아가면, 당면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교육진보 진영과 진보교육감이 이룩한 소중한 성과들을, 새민련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을 때 과연 이어나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그 핵심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만들어온 주역들이 새민련 간판을 달고서도 교육감이나 광역의회에 원활하게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 중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새민련의 현재 행태를 보면 도무지 그런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진보교육감의 레전드가 된 김상곤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 해도, 김진표 같은 후보에 밀려서 당내경선의 문턱조차 넘기 힘든 게 새민련의 현실이다. 새민련은, 지역에서 조직세가 밀리지만 경쟁력 있는 후보를 지도부가 책임지고 전략공천으로 꽂아넣는 리더십의 발휘를 기대할 수 있는 정당도 아니다. 가끔 그런 짓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후보 경쟁력 차원이라기보다는 자기사람 심기 차원에서 이뤄지는 무리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자로 진입하는 교육진보 진영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아닌 거다. 


사실은, 이 사람들에 대한 새민련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어났다.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형태의 시의회 공천 배제 사건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양천고 교사로 일하며 사학비리와 싸우다가 해직당한 뒤 교육의원에 출마, 당선되어 사학재단을 합법적으로 견제할 권한을 쥐었던 김형태 교육의원은 그 업계의 레전드였다. 그 유명했던, 이재용 아들의 국제중 부정입학 사건을 밝혀낸 게 김형태였다. 뉴스로 그 장면을 보며 "저 사람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구만"이라 말하던 지인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야권 지지층의 입장에서 볼 때 김형태는 서울시 교육의원 중 가장 돋보이는 존재였고, 다시 뽑아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교육의원이라는 직책이 사라지고 그 역할을 서울시의회가 흡수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면서, 사실상 새민련의 공천을 받지 않고서는 지난 4년간 했던 역할을 다시 할 수 없도록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무소속이었던 김형태는 새민련에 가입하고, 참여연대나 참교육학부모회 등 웬만한 교육운동 단체들의 추천서를 산처럼 쌓아들고 서울시의원 공천의 문을 두드렸다. 당내 경선을 하더라도 괜찮았다. 그런데 새민련의 결정은, 김형태 대신 교육진보 진영이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교육계 비례대표로 전략공천하는 것이었다.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일하던 인사였다.[각주:5]


김형태 공천 배제를 둘러싼 '자기사람 심기' 논란은, 정당정치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어느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재벌 같은 경제권력이 횡포를 일삼는 정글같은 사회를 바꾸려면 어떻게든 정치와 정당을 통하는 수밖에 없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유력 정당이 너무 엉망인 거다. 제3정당 같은 시도가 꾸준히 실패해 왔기 때문에 새민련(민주당)을 고쳐서 쓰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의 전망이 너무 어두운데, 그 '고쳐 쓰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이 엉망인 정당에 더 큰 권한과 영향력을 당장 부여하면, 그 바깥에서 어렵사리 일궈낸 성과들조차도 무위로 돌아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원칙대로 무작정 '정당정치 강화'만을 외치자니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교육감 정당공천제가 일반론 차원에선 바람직한 제도가 맞다.그러나 한국 정당(이라 쓰고 새민련이라 읽는다)의 한심한 꼬락서니라는 현실 변수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교육감의 정당공천 배제를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차선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새민련이 언젠가 자당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교육감 정당공천이니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이니 하는 것들에 손을 들어주는 순간이 온다면, 일어나서 저지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믿고 맡길만한 사람들로 거듭났다는 아주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또 모를까.

  1. 다음 기사를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07081 [본문으로]
  2. 이런 식의 '조율' 혹은 '거래'가 꼭 나쁜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잡아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정치집단의 특성상 내부 교통정리는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때로는 윤리적으로 애매한 선택도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 중에서도 좀 더 나쁜 선택과 덜 나쁜 선택 간의 차이는 따져야겠지만, 싸잡아서 금지하자는 식의 발상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본문으로]
  3. 필자 역시 이런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하다. [본문으로]
  4. 예를 들면 다음 기사 같은 것들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00269.html [본문으로]
  5.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http://m.cafe.daum.net/riulkht/KdnU/1500?listURI=%2Friulkht%2F_rec%3FboardType%3DM&boardType=M&qaanswerid=1500®dt=2014051913585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