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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최저임금을 말한다면 오바마처럼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노동계와 재계 간의 힘겨루기가 다시 한창이다. 언론도 간간히 보도하고 있고 주변에서도 관련 논의를 접한다. 그런데 매년 하던 캠페인을 올해도 비슷하게 반복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며 대폭 올려야 합당하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저것보다는 세련되게 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몇 자 적어 본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불을 지피고자 할 때 피해야 할 접근법이 있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 악덕 기업주'를 규탄하며 대중의 분노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안 좋은 습관이다.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화법이다.


'분노'를 자극하는 화법이 자주 쓰이는 데 이유가 있긴 하다. 재벌의 대변자들이 내놓는 황당한 주장들이 실제로 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자는 재계의 최근 요구가 하나의 사례다. 현재의 최저임금도 높으니 일부 업종에 한해서는 임금을 덜 줘도 되게 바꾸자는 말을 들으면 노동계 입장에서는 열 받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의 최저임금도 월급으로 환산하면 109만원이라 생활이 안 되는데, 이보다 덜 주면 뭘 먹고 살란 것이냐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문제는 정치적 사안이 다 그러하듯 최저임금 조정도 관중이 있는 게임이고 그들을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들어야 일이 잘 풀린다는 데 있다. 그런데 어떤 언어를 사용해서 말하는지, 어떤 관점을 선택해서 말하는지에 따라 똑같은 입장이라도 설득력이 달라진다. 생각나는 대로 막 던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 논의를 '불쌍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에 대한 성토로 가져갈 때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보는 사람에게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다. 좌파에 대한 편견인 '권력 잡으면 죽창 들고 다 찔러죽일 것 같은 사람들'의 인상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인상은 특히, 대기업과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그들의 반대편에 설 수도 있는 중소자영업자들이 대기업 편을 들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잘만 하면 이쪽으로 끌어올 수도 있는 일부조차도 저쪽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을 '불쌍한 사람들'에 관한 문제로 만들어 버리면,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들(월급 많이 받는 사람들)이 사안에 관심을 가질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든다.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에 주목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여기 모범사례를 제시한다. 정치적 지지를 끌어 모으는 기술에 관해서는 따라갈 자가 없다고 정평이 난 분이다. 대가의 솜씨를 감상해 보자.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고작 먹고 사는 정도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돈을 벌지 못하는 데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불황이 닥치기 한참 전부터 그래 왔습니다. 이 흐름을 뒤집어야 합니다. 운 좋은 소수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인에게 기회를 주는 세상을 복원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출신이 무엇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last name)이 무엇이든 간에 열심히 일하고 자기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 안정과 제대로 된 임금으로 보상받도록 해주는 것이 오늘날의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what we're about today)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빈곤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요. 이 곳 미국에서는 안 됩니다...


2주 전에 저는 메릴랜드의 코스트코를 찾았습니다. 코스트코는 수익성이 아주 높은 회사입니다. 주가도 높지요. 사방에 지점을 내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철학은 높은 임금이 생산성을 높이고 이직을 줄이는 똑똑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해 하며 회사가 자신들에게 투자한다고 느끼는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합니다... 코스트코 방문을 마칠 무렵 저는 계산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관리직에 오른 분들을 만났습니다. 20년을 일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회사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그들에게 마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제가 TV에 나온 다음날에는 한 여성분으로부터 편지까지 받았습니다. 코스트코에 입사원서를 내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웃음)...


최저임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주장을 수년간 계속해 왔지만, 그들이 틀렸음이 계속해서 입증되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에 좋은 일이며, 노동자들에게도 좋고, 경제에도 좋습니다. 직원들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이 쇼핑에 쓸 돈이 더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기업들은 더 많은 고객을 얻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들이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더 많은 이익을 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달에 노벨상 수상자 7명을 포함한 600명의 경제학자들이 하원 지도부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법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는 내용입니다. 경제 침체가 아니라 경제 부양을 가져오는 법안입니다.


-2014.02.14. 버락 오바마 연설 중에서 인용


오바마는 19분의 긴 연설시간 동안 단 한번도 '악덕 기업주'를 언급하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을 말하는 대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말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더 나은 경제와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말했다. 이렇게 되면, 듣는 사람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남이 아닌 의 문제로 여기고 공감할 여지가 넓어지게 된다. 그는 분노를 요구하는 대신에 희망을 제시하는 연설을 했고, 그것만으로도 청중의 이목을 끌고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언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좌파로 분류되는 이들이 이런 방식의 말하기를 낯설어 하는 것은 운동의 시각으로 세상을 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조를 운영할 때는 '폭넓은 대중의 지지' 같은 것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조합비 내고 시위나 파업에 참여할 핵심 인원만 모집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도 상관없되 결집력이 강해야 하는 집단을 조직할 때는 '적'에 대한 분노를 끌어내는 방식도 쓸만할 수가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같은 것은 정치가 결정하는 사안이다. 정치는 본질상 51%를 얻어야 이기는 게임이며 이것이 안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따라서 운동과는 다른 화법과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운동판에서 성장한 분들이 이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른 사안에서도, 분노와 적대감을 요구하는 캠페인만 하며 자족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심지어 정당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다. 야권에선 어느덧 일상이 된 풍경이다. 


단순히 상대가 나쁜 놈이라 외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바마처럼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지를 말하고, 자신의 정책이 개별 유권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지를 풀어내야 한다. 한국 야권의 많은 문제들이, 이 역할을 못하는 데서 온다.

  • 2014.06.21 00:37

    너무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ㅂㅈㄷ 2014.06.26 19:28

    동의합니다

  • 아인애비 2014.07.07 02:24

    저도 잘 읽었습니다. ^^

  • choiskyy 2015.01.04 12:39

    잘 읽었어요. 운동권의 화법으로는 결국 원하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 맞는 말입니다. 논리적인 근거와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 강한 언어가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진보라고 하는 정치인들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 시스루 2015.01.06 15:15 신고

      갈 길이 멀죠. 문제의식도 많이 부족하고.

    • 명순홍 2015.01.21 19:00

      운동권의 화법은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오바마의 화법은 기존의 불평등을 내버려두고 타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의 화법이 어떠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죠. 오바마 개인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데에는 영향이 있겠지만요ㅋ

  • 명순홍 2015.01.21 18:57

    완곡어법이 가능한 것은, 오랜세월을 두고 축척되어온 공감대가 있고, 거기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기득권이 무시하지 못할만한 사회적 압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공감대라는 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실제로 민중의 분노가 축적되어서인 경우도 많죠. 미국 민중들이 핍박당한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기존의 경험에 기반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죠.

  • 명순홍 2015.01.21 19:10

    중요하지 않은 '화법'의 문제에 초점을 돌려 큰 그림을 왜곡하시는 느낌이 강한 포스팅이네요. 어조는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말할 때에는 이에 예상되는 반발을 막기 위해 강한 어조와 이에 수반되는 강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 기존의 구도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최소한의 우리 몫'을 '간청'하는 형태의 요구라면 당연히 신경쓰지 않아도 말투는 방어적으로 사그러들 수밖에요.

    초임 때의 오바마와 재선 때의 오바마가 달라진 것은 '어조'만이 아닙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 자체에 과세하고 규제하려 들던 초기에 비해, 그 불평등 구도는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돌아섰습니다. 이 큰 그림은 블로그를 보는 분들께 감추고, '말하는 방식'이 변화를 부른다는 왜곡된 그림을 보여주는 이 포스팅은 상황을 보는데에 썩 도움되는 글은 아니어 보이네요.

    뭐, 이미 기존의 기성에 타협하고 초점이 내 자녀의 교육과 성공으로 바뀐 30-40대의 학부모 주부님들은 이 포스팅을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이고 공유까지 하려 할 수도 있겠지만요.

  • 시스루 2015.01.23 14:06 신고

    명순홍/ 남의 글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일단 글의 핵심 논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죠. 이게 안 되면 대체로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오바마의 화법을 (직설어법에 대응되는 의미에서의) '완곡어법'이라고 이해한다면, 제 글의 핵심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어조의 강도를 낮추자는 게 아니라 지지할 사람이 늘어날(ex. 영세 자영업자, 최저임금보다 더 받는 사람) 말을 하자는 게 핵심이고,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죠. 여기서부터 핀트가 안 맞으니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될 수밖에요.

    시간당 10달러로의 최저임금 인상이 별 거 아니라는 시각도 참 난감하죠. 이게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좋아하는 님에게는 "기존의 구도에 순응"하는 "간청"에 불과하다고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수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 간 잘 안 됐던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본인들이 체감할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임을 아니까요.

    월스트리트에 대한 규제와 과세를 포기한 것이 문제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저임금 인상이 덜 중요한 이슈가 되는 건 아니죠. 운동권의 눈에 덜 찬다고 해서 세상에도 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 곽동진 2015.09.19 10:46

    매우 좋은 분석이고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양해없이 퍼가도 되겠지요?....

    • 시스루 2015.09.19 17:04

      아 그게요. 공지사항에 써놓았는데요. (못보신 모양이군요)
      퍼가지 말아달라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글이 필요하시면 하이퍼링크를 걸어주는 쪽으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