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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성범죄자는 야한 여성을 노리지 않는다

노출을 줄이면 성범죄가 줄어들까? 통계는 다르게 말한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3년 전에 쓴 글입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여기저기로 퍼날라지고 읽히는 경우가 있는 모양입니다. 성범죄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블로그를 찾게 되는 분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괜찮은 자료를 하나 소개할 테니, 필요한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연쇄 강력범죄 실태조사 (II) 연쇄 성폭력, 박형민·김지영·김태명,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구글링으로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성범죄자 인터뷰를 토대로 한 연구인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성범죄자는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이나 매력적인 여성을 노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만한 여성, 다시 말해 제압하기 쉬워 보이는 상대를 노린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성범죄 발생은 피해자의 행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나온 연구가 아닙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지요. 국책연구기관이라서 보수적인 곳인데도 결론이 이렇습니다. 


분량이 500페이지 정도가 되는 두꺼운 보고서라서 전부 읽기엔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요약본도 존재합니다. 언론 기사인데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기사 보기


기사 내용의 일부를 봅시다.


모르던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경우 상대방의 외모가 매력적이라거나 야한 옷차림을 보고 성폭행을 했다는 대답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재소자들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를 골랐다”는 답을 더 많이 했다.


성범죄자가 야한 옷을 입은 여성도 노리지 않으며 심지어 예쁜 여성조차 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저 범죄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여성을 고른다는 것이죠.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초에 강간 같은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이른바 '성욕의 충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력 욕구의 충족이지. 이거 중요합니다.


한국은 성매매를 하기가 아주 쉬운 나라입니다. 시기와 연구자에 따라 수치가 변동하긴 하지만, 20~30대 여성인구의 최소 4%가량이 성매매에 종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식의 연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사회입니다. 성매매에 필요한 금전적 비용도 저렴한 편입니다.


돈 몇만원 내면 성욕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나라에서 굳이 강간을 선택하는 놈이 있다면, 이건 성욕 충족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성욕을 해소하는 게 목적이면 성매매 업소를 찾아도 되는데 뭐하러 쇠고랑을 찰 위험을 감수하고 강간을 하겠습니까.[각주:1] 그들이 원하는 건 성적 쾌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쾌감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은 성범죄의 동기가 '권력 욕구의 충족'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이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남들로 하여금 싫으면서도 뭔가를 하게 만드는 데서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가장 극단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행위가 강간입니다. 남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 더 '강제성'을 띤 행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사 내용을 좀 더 봅시다.


대부분의 경우 얼굴을 확인해본 적도 없다거나 상대방의 나이가 자신보다 많았다는 답을 했으며, 일부 재소자의 경우 ‘오히려 미인을 만나면 접근이 안됐다’는 답을 내기도 했다. (중략)


특이한 점은 연쇄성범죄자들이 범죄를 통해 ‘성적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 특별한 성적 쾌감 보다는 일탈이 가져다 주는 짜릿함이나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권력욕구를 충족시킨 데 따른 쾌감을 느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 가해자는 “범죄를 할수록 양심의 가책은 커지는 대신 소외감이나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46ㆍ술집경영, 미성년자 강간)고 표현했다. 


이것이 진짜 현실입니다. 성범죄는 성욕을 주체 못하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이 유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선을 넘어버린 변태들이 저지르는 폭력일 따름이지요. 그러니 여성이 옷을 야하게 입는지 겹겹이 껴입는지, 얼굴이 예쁜지 아닌지를 신경쓰지 않는 것입니다. 


성범죄가 성욕이 아닌 권력 체험에 관한 문제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군대 내 성폭력입니다. 사실상 남성들만 존재하는 내무반 안에서 성폭력이 흔하게 벌어집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면 알 겁니다. 섹스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거나, 성기를 만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지. 이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성애자가 아니며, 가해자는 선임이고 피해자는 후임인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사실도 알 겁니다. 연구 결과도 그렇게 나옵니다. 이런 성폭력은 남을 가지고 노는 권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 남성을 대상으로 성욕을 느껴서 벌이는 것이 아니지요.


애초에 범죄의 원인이 이러한데, '조신하게 입어서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지 말아라'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여성에게 던지는 사람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소위 '꼰대성'을 거론할 것도 없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일반인이면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이나 정부 정책 담당자 등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면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1.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됐으니 성매매도 사법처벌의 위험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까봐 미리 적어둡니다. 그 법이 제정된 2004년 전에도 강간은 아주 많이 일어났습니다. 수천년 동안 꾸준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