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해방 후 농지개혁의 주역은 미군정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식민지 해방 직후 농지개혁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제 역사학계에서 거의 '합의'에 가까울 정도로 의견일치가 이뤄진 상태다. 지주들의 농토를 국가가 강제로 매입해서 농민들에게 유상분배했던 당시의 조치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의미있는 개혁이었으며, 1960년대 이후 남한 경제 고속성장의 토대가 됐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별다른 이견이 없다.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농지개혁이 의미가 있었냐 없었냐를 두고 쟁점이 형성되지를 않는다. 그런 좋은 일을 주도적으로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각주:1] 진보 계열은 조봉암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뉴라이트에서는 이승만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각자가 자기 편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봉암이 진보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었다고 진보 사학자들이 말하면, 뉴라이트는 애초에 그런 조봉암을 장관으로 임명한 이승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반론하는 식이다. 나는 그냥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세계사의 대가, 에릭 홉스봄의 책을 읽다가 제3의 견해를 발견했다. 이 거장의 시각에서는 남한 농지개혁은 이 땅에 무슨 위대한 정치가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개혁의 추진 동력은 나라의 내부에서 온 게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 일단 읽어보자. 


1945~50년에 인류의 거의 절반이, 모종의 농지개혁을 겪는 나라들에서 살았다. 동유럽과 1949년 이후 중국의 경우 공산주의형의 개혁이었고, 전 영국령 인도 제국의 경우 탈식민화의 결과였으며, 일본, 대만, 한국의 경우 일본의 패전, 보다 정확히 말해서 미국의 점령정책의 결과였다.


 …<중략>…소득불평등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심했고 아프리카가 그 다음이었던 반면, 수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덜했다. 그 나라들에서는 미국 점령군의 보호 하에 또는 미국 점령군에 의해서 매우 급진적인 농지개혁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 1997, 490~492쪽


보다시피 홉스봄의 책에는 조봉암이니 이승만이니 하는 이름들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농지개혁의 주역은 남한 현지의 무슨무슨 정치가들이 아니라 그 땅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외국 군대, 즉 미군정이다. 그게 다다. 참 심플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견해가 아주 낯설고 의심스러웠다. 아니 이상하잖아. 반공국가의 대장인 아메리카 합중국이 언제부터 부의 재분배 같은 걸 좋아했다고. 지주의 땅을 강제로 매입해서 나눠주는 게 농지개혁인데, "빨갱이(commy)" 소리 듣기 딱 좋은 이런 급진적 조치를 미국이 했다는 걸 믿기가 어려웠다. 근데 구글링을 해 봤더니 진짜다. 농지개혁을 처음 시작한 때가 미군정 시기였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팩트다. 공포한 법령에 아예 박아버렸으니까.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뒤 한국 국회가 바통을 넘겨받고 마무리를 하긴 했는데 기본적인 틀은 미군정에서 짜준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농지개혁의 제도화를 완성한 건 건국 이후의 한국 국회니 농지개혁의 주역은 이승만이나 조봉암 같은 한국 정치인이라는 주장들이 있는데, 별로 의미없는 이야기라고 본다. 그냥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편의적 담론에 불과한 것이지. 왜냐? 생각을 해 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는 IMF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줬다. 그들에게 달러 빚을 좀 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주권에 대한 제한이 너무 심해서, 국내 언론에서는 '경제적 신탁통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데 1940년대의 한반도는 외국 군대가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 국가를 세워본 역사도 없었고, 이제 막 식민 통치를 벗어난 게 고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점령국의 의지를 거스르는 게 가능하긴 했을까? 미군정이 한국 국회에 농지개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요구했더라도, 과연 당시의 정치인들이 그냥 수용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기는 했을까? 여기에 'Yes'라고 답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농지개혁은 미군정 입장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이너한 사안이 아니었다. 미군이 점령한 극동아시아 3개국(일본, 대만,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은 농지의 재분배가 없으면 점령지 농민들의 불만이 커져 공산화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사회주의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하는데, 왜 여기선 하지 않느냐고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농민 집단이 생겨나게 둘 수가 없었다. 동아시아 3국은 냉전의 최전선이었고, 이 지역의 정치적 안정은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목표였던 것이다. 일본의 농지개혁을 지휘했던 라데진스키라는 이름의 미국 농무부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농지개혁의 유인으로는 한편으로는 일본 농민의 궁핍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의 처지를 개선하고 일본 농업으로 하여금 공산주의에 반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이 있었다.” 그리고는 “광범한 자작농 창설을 계기로 일본 농촌은 거의 공산주의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각주:2]


홉스봄이 이 책을 쓴 게 1990년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농지개혁이 한국 정치가들의 업적이라고 우기는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판을 쳤다. 학문의 정치화가 이렇게까지 심해도 되는 건가 싶다. 아니 홉스봄이 어느 제3세계의 듣보잡 학자도 아니고, 직업적 역사학자 중에 그의 책을 읽었을 사람이 몇 명인데 이 무슨… 무려 2010년에 출간된 어느 논문에서 나오는 얘기가 이렇다. "정치 또는 법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은 건국헌법의 농지개혁조항이 이승만의 정치적 결단이었으며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군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 왔다."[각주:3] 참고로 그 '과소평가', 조선일보 같은 곳에선 여전히도 현재진행형이다.




  1. 알다시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의 토지개혁에 비하면 가짜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NL(민족해방파)식 해석이 유행했다. 토지 재분배 방식이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였는데,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여서 하나마나한 개혁이었다는 논지였다. 이제는 이런 해석이 논파된 지 오래라 진보진영에서도 그리 공유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2. Kawagoe, T(1999), “Agricultural Land Reform in Postwar Japan: Experences and Issues”,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May 1999. [본문으로]
  3.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84677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