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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어느 기자의 자기고백, "있는 그대로 쓰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아주 흔하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인정하는 기자들은 흔하지 않다. 어쩌다 그렇다고 인정하는 기자들이 있어도 대체로는 "(내게 적대적인 진영에 속하는) 저 방송이 공정하지 않다"고 손가락질하는 맥락에서의 일이지, "내가, 혹은 '우리 편' 신문이 공정하지 않게 보도한다"는 맥락인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그 희귀한 경우를 우연히 발견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박제해 둔다. 

 

https://archive.is/wLVaS

 

 

... ‘여경과 남경의 비율을 9 대 1로 맞추라’는 황당한 주장(물론 대개의 정치적 구호란 그런 식이다)은 둘째 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현장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혐오 발언을 듣고 있기가 괴로워졌다. 불법촬영물을 “찍는 놈도, 올린 놈도, 보는 놈도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범죄를 규탄하기 위해 “한남 재기해”(한국 남자 죽어라) 같은 혐오 표현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혜화역에서 보고 들은 모든 걸 기사에 옮겨 쓸 수는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기사로 나갔을 때, 자칫 혜화역 시위의 취지가 훼손되거나 더 나아가 미투 운동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더 강화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두려움 없이 살게 해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온 여성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날 혜화역에 있었던 ‘생물학적 여성’ 기자들의 마음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후략)


선담은, 한겨레, [한겨레 프리즘] 페미니즘과 혐오 사이, 2019. 04. 14

 

 

작년 혜화역에서 남성혐오 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언론이 시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그렇게 볼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예컨대 해당 시위 참가자들이 홍대 몰카 피해자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다녔다는 사실을 전달한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남경들아 분위기 좆창내지 말고 웃어', '유좆무죄 무좆유죄' 같은 구호들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이 시위대의 행태 중 문제삼았던 것은 '문재인 재기해(자살해)'라는 구호가 거의 유일했는데, 그나마도 '문제를 제기해'라는 속뜻을 담은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옹호론을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거의 모든 제도권 언론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같은 진보언론이 가장 심각했다)은 혐오의 실상을 감춤으로써 해당 시위를 미화했다. 극단적인 혐오 표출의 현장을,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는 정상적인 집단행동인 것처럼 그려낸 것이다.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대체 저들이 왜 저렇게까지 무리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일반론은 '페미 기자들이 장악한 언론사들이 자기 편의 추한 모습을 일부러 감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증거는 없었다. 언론사의 내부 문건이 유출된 것도 아니고 폭로자가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언론은 혜화역 시위 보도에서 이런 장면을 거의 전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토록 찾기 힘들었던 증거의 한 조각이 자기고백의 형태를 띠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혜화역 시위를 취재하고 보도했던 선담은이라는 한겨레 기자가 자기 손으로 직접 작성한 문장은, '일부러 은폐했다'는 세간의 의심이 진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한겨레에서는 그랬음을 말이다.

 

위의 글상자에 인용된 선담은 씨의 밑줄 친 문장을 보자.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 자기 편에게 불리할 것 같으니 일부러 사실 자체가 없는 양 감췄다는 이야기 되겠다. 이 문장을 쓴 기자 본인에게는, 이런 본심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떤 의미로 읽힐지에 대한 자각이 없어 보이는데(알고 있으면 이런 자폭을 할리가 있나) 실은 황당한 사고를 친 거다. 기자 본인과, 이 글을 지면에 싣도록 통과시킨 한겨레 데스크가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얼마나 결여하고 있는 인간인지를 스스로 인증한 사건이라고 하겠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 기자나 언론사가 '(그들과 가까운) 특정한 세력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사실을 발견하면 은폐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게 왜 문제인 걸까? 그리고 기자들 중에 본인이 그런 보도를 일삼는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이를 왜 보기 어려운 걸까? 답은 간단하다.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와 공론장에 미치는 악영향 같은 고상한 주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해당 언론의 이해타산만 따지는 이기적인 입장에서도 손해는 명백하다. 해당 언론의 신뢰도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편파보도를 일삼는다는 평판이 지배적인 언론인이 되면, 기사를 써도 사람들이 믿어 주질 않는다. '저 놈들은 특정한 정치적 의도에 방해가 되는 불리한 사실은 감추고 유리한 정황은 부풀리는 식으로 보도한다'고 알려진 언론사나 기자의 보도를 접하면, 의심부터 하게 되지 않겠는가. 저번에 사기치던 놈들이니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고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류의 기자들이 언론 환경을 지배하는 주류가 되면, 별 의도가 없는 평범한 기사조차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되는 결과가 생겨난다. 무슨 내용이 됐든 이면의 불순한 의도를 항상 따져 봐야 한다는 시각이 득세하게 되고, 이런 환경은 얼치기 음모론자들에게 '집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게 된다. 애초에 저널리스트가 지켜야 하는 직업윤리 목록에 '공정성'이 포함되게 된 것은 공익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언론 스스로의 사익을 보호하려는 자기방어적 이유 역시 한몫을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데 선담은 씨와 한겨레 데스크는 혜화역 시위 당시 자신들의 보도 행태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어 보인다. 이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본심 노출이 본인들을 향한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위험한 자기고백을 경계심도 없이 어떻게 털어놓을 수가 있겠나?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도 행태를 '밝혀지면 큰일이 날 쇼킹한 고백'이라고 생각했으면 위에 인용된 문장들을 이렇게 태연하게 노출할 리 없다. 있을 수 있는, 별 문제 없는 흔한 스토리로 간주한다고 해야 이들의 행동이 설명 가능해진다. 기자칼럼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건 무슨 자기반성 같은 맥락에서 쓴 문장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예전에 이런 일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큰 잘못이었으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쓴 글이 전혀 아니다. 

 

한국 언론은 사건이 벌어지면 기자들이 자기가 속한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보도하며, 불리한 사실은 감추고 유리한 정황은 부풀리는 식으로 '마사지'를 한다는 지적을 오랫동안 받아 왔다. 욕 먹는다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기자들에게 변명하는 성의(?) 정도는 있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우리는 그런 놈들이 아니다'라는 부인 정도는 했었다. 그런데 이번 한겨레 사건에선 그마저도 없다. 나이브하다 못해 쿨하게까지 느껴지는 인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치라고 지적받던 행태가 아예 일상생활이 되다 보니,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데서 나온 해프닝인 걸까.

 

한국 언론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기레기'란 욕을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